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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명은 어떻게 민주당을 삼켰나 : 정부 '이름'을 중심으로

투샷아인슈페너 2025. 7. 20.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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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재명은 어떻게 민주당을 삼켰나 : 정부 ‘이름‘을 중심으로

이름이 존재를 규정한다. 민주당 정부명으로 본 민주당의 역사 (그래픽=가피우스)정권에 최초로 이름을 붙인 대통령은 김영삼이다.김영삼 대통령은 긴 세월 군사독재정권들과 확연한 선을 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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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최초로 이름을 붙인 대통령은 김영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긴 세월 군사독재정권들과 확연한 선을 긋고 싶어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문민정부'였다. 

이러한 '정부 이름'은 보편적인 전통이 되지는 못했고, 민주진영 정부의 전통이 되었다. 

 

김대중 ‘국민의 정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포용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라는 이름은 고결한 이상이기 이전에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호남이라는 지역적 족쇄와 평생을 따라다닌 비주류의 굴레는 그에게 ‘국민 전체’를 끌어안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통치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의 포용은 선택이 아닌,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필연이었다.   

 

노무현 ‘참여정부’: 고립된 소수파의 처절한 몸부림

노무현에게 ‘참여’는 김대중 마저도 갖고 있던 지역 기득권도 갖지 못한 소수파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그는 당내에서조차 비주류였고, 사회 전체로 보면 거대한 구질서에 포위된 소수파였다. 그가 선택한 ‘참여’는 낭만적 구호가 아니라, 고립된 요새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쏘아 올린 구조 신호였다.   

노사모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국민경선 승리로 등장한 순간부터, 그는 보수 언론, 거대 야당, 저항하는 관료 사회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검사와의 대화’는 토론이 아니라 선전포고였고, 스스로 만든 민주주의2.0 이라는 온라인 토론 사이트는 전통적 권력을 우회해 국민과 직접 동맹을 맺으려는 처절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 몸부림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의 비극적 최후는 ‘참여’만으로는 대통령을 지킬 수 없다는 뼈아픈 트라우마를 민주 진영에 새겼다.   

 

 

문재인 ‘민주당 정부’: 트라우마가 쌓아 올린 여당의 요새

 

이는 돌이켜 보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노무현 트라우마의 발현이었다. 고립의 위기에서 당에 의해 버려졌던 노 대통령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박이, '민주당 정부'라는 네이밍을 통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해찬으로 상징되는 ‘강한 여당’과 ‘20년 집권론’은 이 요새의 설계도였다. 당은 청와대의 충직한 방패가 되어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이 견고한 방패는 외부의 적을 막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내부에서 자라나는 더 큰 위협을 키웠다.  
추미애-윤석열 갈등의 광풍 속에서 정권의 가장 강력한 적을 스스로 키워냈고, 당이라는 우산 밖에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던 이재명이라는 불의한 권력이 당을 순식간에 접수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민주당은 어느 순간 질적으로 변해버렸다.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방탄 팬덤과 괴물 독재의 서막

그리고 마침내, 이재명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가 내건 ‘국민주권’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은 마침내 리더 개인을 숭배하고 반대자를 좌표 찍어 공격하는 광적인 팬덤, ‘개딸’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들은 토론 대신 ‘문자폭탄’으로 무장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색출해 집단 린치를 가하며 당내 민주주의를 질식시킨다.   

이재명 체제는 이 강력한 팬덤을 동력으로 삼아,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리더 개인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는 ‘방탄 도구’로 전용한다. 

'검찰 개혁'과 '내란 종식'이라는 명분 하에 하늘 아래 '이재명'만을 위한 위인설법이 판을 친다. '팬덤정치'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개딸'들은 새로운 시민권을 얻고 그들의 뜻 만이 '국민주권'이 되어간다. 

 
통합의 대상이었던 국민, 저항의 주체였던 국민은 이제 사라졌다. 오직 리더의 안위를 위해 국가의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하고, 반대자를 적으로 규정해 섬멸하는 ‘방탄 팬덤’만이 남아 ‘국민’을 참칭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민주주의의 현주소이자, 괴물의 서막이다.